“노약자석 비었어도 젊은이는 무조건 앉지 말아야 하나요?”

 

 

 

 

[취재대행소 왱] 아불대(아무불만대잔치), 20대가 직접 말하다 ⑦ “양보가 의무?” 경로석에 선 청년

 



“지하철에서 갑자기 어떤 할아버지가 버럭 소리를 질렀어요. 젊은 게 버릇없이 자리에 앉아 있다고 말이죠.”

김사라(21)씨는 얼마 전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지하철로 집에 가다 봉변을 당했다. 짐 든 할머니를 보지 못하고 자리에 앉아 있다가 옆에 있던 할아버지에게 큰소리로 꾸지람을 들었다. 김씨는 13일 “다른 승객들의 시선이 민망해서 다음 역에서 내릴 수밖에 없었다”며 “노인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건 배려지 의무가 아니다. 청년들도 지치고 힘들 때가 있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해인(21)씨도 면접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비슷한 일을 겪었다. 오랜만에 구두를 신고 외출했다가 발목을 접질리는 바람에 노약자석에 앉았는데, 등산복을 입은 할아버지가 호통을 쳤다. 정씨는 “주변 시선 때문에 옆 칸으로 옮겼다”며 “너무 억울해서 얼굴이 화끈거렸다”고 말했다. 윤창현(27)씨도 지하철에서 황당한 경험을 했다. 술 취한 할아버지가 “요즘 애들은 생각 없이 나태하게 산다. 우리 땐 얼마나 고생하며 자랐는데, 정치 경제도 모르는 것들이 어디서 나불대!”라며 고성을 질렀다. 윤씨는 이를 만류하려 했다. 그런데 주변 어르신들이 오히려 “틀린 말은 아니지 않느냐”며 할아버지를 옹호했다. 윤씨는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하고 지하철에서 내렸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해 10월 발표한 ‘노인인권종합보고서’에 따르면 청장년층(18세 이상 65세 미만)의 87.6%는 노인을 ‘대화가 통하지 않는 상대’로 보고 있다. ‘노인과 청장년 간 갈등이 심하다’고 생각하는 비율도 80.4%로 나타났다. 나태준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는 “노년층 비중이 커질수록 고령 세대를 떠받들어야 한다는 청년들의 부담은 증가한다”며 “이는 필연적으로 세대 갈등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국민일보 ‘취재대행소 왱’과 대학내일20대연구소가 지난 1월 11~14일 전국 20대 3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모바일 여론조사에서 ‘노인 인구 부양에 부담을 느낀다’는 응답은 전체 56.0%였다.





세대갈등이 일상적으로 표출되는 공간이 지하철이다. 노약자석 자리 양보 문제는 세대갈등을 얘기할 때 자주 등장하는 주제다. 20대들도 자리 양보가 필요하다고 본다. ‘연장자에 자리 양보하는 게 당연하다는 사회 인식이 부당하다’는 20대는 5명 중 1명(21.7%)뿐이었다. 실제로 지하철을 이용할 때 노약자석에 자리가 있어도 비워둔다는 20대는 77.0%였다. 다만 자리 양보를 당연하게 생각하는 일부 노인들의 인식이 20대들의 ‘혐노(嫌老·노인 혐오)’를 부추긴다는 지적이 나온다. 2016년엔 한 노인이 노약자석에 앉은 임산부를 폭행하는 사건이 발생해 논란이 됐었다. 대학생 송수현(25)씨는 “지하철로 통학을 하는데 매일 1시간 가까이 서 있으면 청년들도 다리가 아프다”며 “이를 이해하는 어르신들도 많지만 일부 노인들이 억지를 부리면 기운이 빠진다”고 말했다.

일본은 같은 유교 문화권이지만 젊은이들이 노인에게 자리 양보를 잘 하지 않는다고 한다. 신상목 전 주일대사관 서기관은 한 언론에 보낸 기고문에서 “일본인들은 버스나 전철에서 노인들에게 자리를 잘 양보하지 않지만 노인이 불편해 하는 기색이 보이면 경쟁하듯 자리를 양보한다”며 “나이가 많고 적음이 아니라 도움이 필요한지 아닌지가 양보의 기준”이라고 했다. 노인이기 이전에 ‘자립 의지와 능력’이 있는 개인으로 대우하고, 노인들도 그쪽을 더 편하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20대 중엔 노약자석을 따로 구분하지 말고 자발적으로 양보하는 문화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대학생 전성배(24)씨는 “노약자석과 일반석을 섞어 배치한 뒤 ‘필요한 경우 양보를 부탁하세요’라는 안내 글을 적어 놓는다면 지금처럼 양보를 강제하는 것보다 (노인과 청년 간) 훨씬 부드러운 소통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만 65세 이상 지하철 무임승차’ 제도도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무임승차 제도는 1980년 65세 이상 노인이 인구의 3.9%에 불과하던 시절 경로우대 목적으로 도입됐다. 그러나 지금은 노인 인구가 전체의 14%가 됐다. 6개 도시철도(서울·부산·대구·인천·광주·대전)의 2017년 무임 승차자는 연인원 4억4300만명에 이른다. 총 승객 25억3000만명 중 17.5% 수준으로 운임은 5925억원이었다. 지난해엔 6113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손실이 계속되자 도시철도를 운영하는 6개 광역자치단체는 정부와 국회에 “무임승차 손실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운임 인상도 검토되는데 이로 인한 부담은 결국 청·장년층에게 돌아오게 된다. 그러다 보니 ‘지공거사(지하철 공짜로 타는 노인)’라는 노인 혐오 은어까지 나왔다. 서울시에 따르면 노인 기준 연령을 70세로 높일 경우 전국 6개 지자체 무임 손실분의 20.9%가 줄어든다. 

대학생 조건희(21)씨는 “무임승차 제도 때문에 목적지 없이 지하철에서 시간을 보내는 노인들이 많다”며 “결국 부담은 청·장년층에게 돌아오고 이로 인해 세대 갈등이 더 심각해진다”고 말했다. 김호철(가명·25)씨는 “연금으로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되는데 왜 굳이 무임승차 제도가 필요한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20대들 사이에선 무임승차 제도를 폐지하거나 나이 기준을 올려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김충호(23)씨는 “요즘 시대에 65세는 더 이상 노인이 아니다”라고 했고, 조씨는 “노인에게 무조건적인 혜택을 주는 게 아니라 일자리를 제공하는 식의 정책 개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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