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봉 1억인데 가난하다고?… '도둑맞은 가난'인가

 

 

 

[아무튼, 주말]
남녀 5027명 설문 가난의 기준은?


일러스트=안병현

 


먼저 우스갯소리 하나. 최근 인기리에 종영된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을 두고 인터넷에서 이런 글이 돌았다.

"동백이가 늘 돈이 없는 이유는? 한 벌에 150만원이 넘는 프랑스 브랜드 '베트멍' 원피스를 입고 다니기 때문에."

그런데 한번 더 생각해보자. 잘되는 술집 사장인 동백이를 가난하다고 할 수 있나. 하나 더. 만약 가난하다고 해도, 동백이는 비싼 원피스를 입으면 안 되나?

국민 소득 3만달러 시대라지만 '가난'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많다. 대학생·연예인·정치인뿐 아니라 일반 시민까지 가난은 주요 이슈다. '진짜 가난'은 아이러니하게도 '스펙'이 되고, '가짜 가난'은 '코스프레'한다고 말한다. 이런 '가난 인증' 속에서 '가난마저 빼앗겼다'며 상처받는 사람들도 생겨난다. 괴롭고 고생스럽다는 '간난(艱難)'이 어원인 단어. 2019년의 '가난'은 어디에서 어디까지 펼쳐져 있나.

가난이 스펙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의 주인공 ‘동백이’(공효진)가 150만원이 넘는 ‘베트멍’ 원피스를 입고 있다. SBS

 


"있는 집 자식이었네? 맞는다. 빚도 없고, 우리 집은 20억쯤 한다. 그런데 딱 그 집이 전부다. 어머니는 건강이 많이 안 좋아지셨는지 2년 안에 사업을 그만두실 것 같다…진짜 잘사는 집은 타워팰리스 살고, 학생이 차 끌고, 건물 한 채쯤 있어야 잘사는 거지. 우리 집은 그저 전형적인 하우스푸어에 중산층일 뿐이다."(경희대 대나무숲)

"가난이 벼슬인 세상이다. 기초생활수급 대상자인 친구는 현재 학비 면제에 한 달 생활비도 지원받는다. 이들을 위한 해외연수 프로그램도 있다. LH 공단에서 무료로 학교 앞에 자취방도 지원해준다…글쓴이의 환경도 어렵다. 그렇지만 기초생활수급 대상자는 아니기 때문에 방학마다 잦은 알바와 과외의 연속이었고 돈이 없어 외국 한번 못 나가보았다…나는 공평하지 않다고 생각한다."(연세대 대나무숲)

"칼로리 따져가며 먹을 걸 고르던 때가 있었다. 같은 금액 대비 더 열량이 높은 걸 먹으려고. 예전에 누군가 너무 가난해 서울대 접수비를 선생님이 대신 내주셨다는 글을 썼다. 많은 친구는 '좋아요'를 눌렀지만 나는 오히려 화가 났다. 서울대는 진짜 가난한 사람에게는 접수비를 안 받기 때문이다…많은 사람은 다른 사람들도 자기랑 똑같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곳에서 가난한 사람들의 존재는 삭제된다…우리나라에 빈곤은 존재하지 않는다. 적어도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는 것처럼 말하고 행동한다."(서울대 대나무숲)

각 대학의 익명 게시판마다 가난에 대한 '간증'이 넘쳐난다. 가장 큰 이유로 '장학금'이 꼽힌다. 특히 교육부와 한국장학재단이 주는 '국가장학금'을 받기 위해서는 "나는 이렇게 가난하다"는 걸 증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국가장학금을 받기 위해서는 부모 소득, 주거 형태, 대출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일정 기준 이하에 들어야 한다. 그런데 이 기준이 명확지 않아 장학금을 받지 못하는 '억울한 가난'이 속출한다.

'가난 인증'이 활발한 곳이 또 있다. 연예계다. 최근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면서 '힘들게 생활하는 가난한 모습'은 많은 이에게 호감으로 작용한다. 그러나 '가짜 가난'으로 판명되면 '가난 코스프레'라는 비판을 받는다. 반지하 작업실에 살며 공중화장실에서 샤워했던 그룹 '잔나비'의 보컬 최정훈과 어릴 적 가난 때문에 수제비만 먹고 산 적이 있었다고 말했던 래퍼 '마이크로닷'이 그 주인공들이다. 사실 이들은 잘사는 집 아들, 일명 '금수저'였다는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됐다. 반대로, '가난이 콘셉트'라며 비판을 받았던 래퍼 '슬리피'는 최근 솔직한 생활고 고백으로 '진짜 가난' 인증을 받으며 더 큰 지지를 얻기도 했다.

가난의 기준



 


2019년의 '가난의 기준'은 무엇일까. '아무튼, 주말'이 SM C&C 플랫폼 '틸리언 프로(Tillion Pro)'를 통해 20~60대 남녀 5027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절반 이상인 50.63%가 "나는 가난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중엔 연봉 6000만원 이상이 11.35%, 1억 이상도 1.81%나 됐다.

집을 가진 사람도 51.85%, 차를 가진 사람도 59.15%였다. 서울 강남에 살며 외제차와 국내 대형차를 보유한 사람도 있었다.

'나는 가난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교육 수준도 높았다. 대학교 졸업은 64.69%, 대학원 졸업도 8.44%나 됐다.

이들은 언제 가난을 느낄까. "원하는 것을 살 수 없을 때"가 52%로 가장 높았고, 남아 있는 대출을 볼 때(34.87%), 항상(19.16%), 아플 때(16.85%) 순이었다. 기타 의견으로는 "부모님과 돈 이야기를 할 때"(20대), "노후 준비가 안 돼 있을 때"(30대), "취미 생활을 할 수 없을 때"(40대), "주변 사람과 비교할 때"(50대), "자식들 결혼이 다가올 때"(60대) 등이 있었다.

"나에게 1억원이 생긴다면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일"은 "집을 넓힌다"가 45.77%로 가장 높았고, 사고 싶었던 물건을 산다(27.05%), 차를 바꾼다(11.26%), 먹고 싶었던 음식을 먹는다(5.19%) 순이었다. 기타 의견으로는 "여행이나 유학을 간다"(20대), "대출금을 갚는다. 투자를 한다"(30대), "저축을 한다. 전원생활에 도전한다"(40대), "노후 자금"(50대), "문화생활을 한다. 어린이재단에 기부한다"(60대) 등이 있었다.

이들은 얼마가 더 있어야 부자가 된다고 생각할까. 10억~100억원이 38.91%로 가장 높았고, 5억~10억원(29.82%), 1억~5억원(14.70%), 100억원 이상(13.51%) 순이었다. 동행복권 로또히스토리에 따르면, 평균 1등 당첨 금액은 20억2545만8776원이다. 이에 따르면 응답자 중 상당수는 로또 1등에 당첨돼도 부자라고 여기지 못할 듯하다.

전체 응답자 중 18.78%는 "주변에 '난 가난해'라는 말을 자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 이들은 진짜로 가난할까.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대표작 '상실의 시대'에서 여주인공 미도리는 이렇게 말한다. "부자의 최대 이점이 무엇이라고 생각해? 돈이 없다고 말할 수 있다는 거야."

가난은 상대적이다. 내가 가난하다고 느끼면 가난이다. 그런데 그 속에서 상처받는 사람들이 생겨난다. '인스타그램'의 '#가난스타그램' 인증 글에 올라오는 외제차, 명품 화장품, 고급 와인 사진이 씁쓸한 이유다.

최근 한 대학교 익명 게시판에 올라온 글이다.

"아마 나는 지금이 가장 가난할 듯싶다. 나랑 형 교육비에만 십몇억 넘게 썼을 테니깐." 그 글에는 이런 댓글이 달렸다. "그 수준이면 가난이라는 말에 입 여는 게 되게 기만 같네. 가난이란 말이 붙을 집안이 아닌데." 누군가는 이런 글도 올렸다. "나는 오늘 가난을 도둑맞았다. 나는 요샛말로 흔히 말하는 흙수저였다. 훌륭한 성품과 헌신의 태도를 지니신 어머니 밑에서 자랐기에 나 스스로는 흙수저라고 생각한 적이 없지만, 어찌 되었든 기초생활수급자였기 때문이다."

'도둑맞은 가난'은 고(故) 박완서 작가의 단편 소설 제목이다. 가난 때문에 온 가족을 잃은 여공이 지금까지 의지하고 살았던 가난한 남자친구가 사실은 부잣집 도련님이라는 사실에 분노하며 말한다. "맙소사 이제부터 부자들 사회에선 가난 장난이 유행할 거란다…나는 우리가 부자한테 모든 것을 빼앗겼을 때도 느껴보지 못한 깜깜한 절망을 가난을 도둑맞고 나서 비로소 느꼈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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