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김에'…'묻지마 폭력'에 쓰러지는 사회적 약자들

 

 

 

‘술김에 범죄’...사회적 약자 향한다

"우월감 느낄만한 상대에게 분풀이"



‘거제 살인사건’은 피해자가 명백한 약자(弱者)였다. 실제 피해자 윤모(58)씨 체구는 키 132cm, 몸무게 31kg으로 초등학생 정도로 작았다. 반면 가해자 박모(21)씨는 183cm의 건장한 체구였다.

경찰에 따르면 박씨는 지난 4일 오전 2시 36분쯤 경남 거제시 한 선착장 인근 길가에서 윤씨를 32분간 72차례 구타해 사망에 이르게 한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은 살인 대신 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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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에서 20대 남성이 길에서 노숙하던 50대 여성을 무차별 폭행해 숨지게 했다. /CCTV 영상 캡처

 


◇‘술김에 범죄’...사회적 약자 향한다

저항할 힘이 없는 약자를 대상으로 한 ‘묻지마 범죄’에 대한 국민적 공분(公憤)이 일고 있다. 거제살인사건의 현장 폐쇄회로(CC)TV를 보면, 피해자는 32분간 구타당하면서 단 한 번도 반격하지 못했다. 특별한 범행동기도 없다. 다만 범행에 앞서 휴대전화로 ‘사람이 죽었을 때’ 등을 검색한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이를 근거로 ‘계획적 범행’이었음을 의심하고 있다.

지난달 29일 새벽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 아파트에서 발생한 ‘경비원 폭행사건’도 피해자가 고령의 약자였다. 가해자는 경비실로 이틀에 한 번꼴로 항의전화를 걸어대던 최모(45)씨다.

범행 당일 새벽 1시57분쯤 최씨는 술을 마신 상태에서 "층간소음 민원을 해결해주지 못했다"는 이유로 경비원 김모(72)씨를 무차별 폭행했다. 층간소음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는 입주민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을(乙)’의 위치에 있는 경비원에게 분풀이한 것이다.최씨는 범행 이후 아무 일이 없었다는 듯이 집으로 돌아가 잠을 잤다. 피해자는 뇌사 상태에 빠져 이날 현재까지도 일어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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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9일 새벽 서울 홍제동의 한 아파트 주민인 40대 남성이 70대 경비원을 만취한 상태로 폭행하는 모습(위). 경비원은 현재 뇌사 상태에 빠졌다./SBS 방송화면 캡처

 


전문가들은 "음주상태에서 저지른 범죄는 사회적 약자에게 특히 위험하다"고 경고하고 있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 얘기다. "욕구불만 상태의 가해자가 술을 마시면 우월감을 느낄 수 있는 상대적 약자에게 분풀이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범죄에도 일종의 ‘갑을 관계’가 적용되면서 더욱 심각한 피해를 낳습니다. 거제살인사건 피의자 박씨는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만취 상태였다고 변명한 걸로 보입니다."

사회적 약자를 겨냥한 범죄는 대체적으로 의도된 범죄라는 분석도 있다. 권일용 전 경찰청 과학수사관리관 범죄행동분석팀장은 "범행을 저지르는 짧은 시간에도 공격당하지 않을 상대라든지, 뒷수습이 쉬운 상대를 선택한 것"이라며 "이 경우 범행을 저지르는 동안에도 자신이 하는 행위가 잘못됐다는 것을 인식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고 말했다.

실제 거제 살인사건 당시 목격자들이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하자, 범인 박씨는 "내가 경찰이다"라고 큰소리치고 범행 흔적을 감추려 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늘어나는 ‘묻지마 범죄’…우발적 범죄·주취 범죄 엄벌해야

특별한 계기가 없이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한 범행은 해마다 늘어나는 추세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이런 유형의 ‘묻지마 범죄’는 2014년 7964건, 2015년 8019건, 2016년 8343건, 2017년 9374건으로 집계됐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묻지마 범죄를 흔히 ‘무동기 범죄'라고 하지만, 가해자 입장에선 자신보다 약한 대상에게 분풀이 하는 것"이라며 "양극화가 심해질수록 ‘갑을관계’도 명확해지기 때문에 사회적 약자를 겨냥한 범죄가 늘어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뚜렷한 범행동기가 없다면 ‘우발적 범죄’, 술에 취한 상태라면 ‘주취 감형’ 등으로 감형되는 분위기를 반전시켜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이 교수는 "취중 범죄는 형량이 깎인다는 범죄자들의 ‘학습효과’도 무시할 수가 없다"면서 "도리어 주취 범죄가 피해자에게 미치는 위험성이 더 크므로 가중처벌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도 "불우하게 사는 사람이나 사회적 약자의 경우 묻지마 범죄의 표적이 될 가능성이 높은 만큼 어떤 이유에서든 가해자에게 면죄부를 주기보다는 엄하게 처벌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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