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원은 어떻게 대도시 ‘최후의 주거지’로 변해갔을까 [정리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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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오전 6명의 사망자와 12명의 부상자가 발생한 서울 종로구 관수동의 한 고시원 화재 현장에서 경찰과 소방 관계자들이 화재 감식을 하고 있다./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yunghyang.com

 


지난 9일 서울 종로구의 국일고시원에서 불이 나 7명이 숨지는 등 2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습니다. 이날 숨진 7명은 30대 남성 1명을 제외하곤 모두 홀로 사는 50~70대 남성으로 대부분이 생계형 일용직 노동자였습니다.

다닥다닥 붙은 방, 좁은 탈출구, 불법 증축의 만연, 안전 시설 미비… 고시원이 화재에 취약하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화재 피해자들 역시 모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다만 경제적인 사정 때문에 고시원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들은 소수가 아닙니다. 지난달 도로교통부는 쪽방·여관·고시원 등 ‘비주택 거처’ 거주 인구가 무려 37만 가구에 이르며, 이 중 고시원에는 15만 가구가 살고 있다는 조사결과를 내놨습니다. 서울 전체 가구의 4% 가량이 고시원에 사는 셈입니다. 그리고 이들 대부분은 이번 화재의 피해자들처럼 일용직·비정규직 노동자들입니다.

고시원이 고시생들의 공부방에서 저소득층 ‘최후의 주거지’로 변모해간 지난 역사를 정리해봤습니다. ‘살려고 발버둥 친 사람들’이 고시원으로 모여드는 동안, 고시원은 왜 더 안전해지지 못한 것일까요?

■처음부터 고시원은 위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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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3월29일자 동아일보 ‘성업 고시원 환경기준 낙제점 많다’

 


처음 고시원은 1970년대 고시생, 즉 사법·외무·행정고시 준비를 하는 학생들을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1990년 3월29일자 동아일보를 보면 고시원의 초기 형태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기사에 따르면 “70년대 중반 서울대 주변 신림동 일대에 고시생 전용 하숙 형태로 생겨난 고시원은 신촌, 혜화동, 안암동 등 대학가로 확산, 도심 속에 고시촌을 형성해왔다. 초기에는 단순한 독서실이나 하숙의 형태로 출발한 이들 고시원은 최근에는 50~100여개의 독방을 갖춘 ’기업형‘으로까지 발전, 대학가 고시문화의 한 부분을 이루고 있다”고 합니다. 

이 기사에 따르면 1990년에 이미 서울시내에 50여명 이상을 수용하는 대형 고시원만 200여개가 있었고 이곳을 이용하는 고시생이 2만~2만5000명에 달했습니다. 1985년~1986년에 신림동을 중심으로 소규모 고시원이 20~50여개 난립하기 시작했다는 기사도 난 것을 보면, 1980년대 시작된 고시원 건축붐이 빠르게 확산됐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고시원이 이처럼 인기를 끈 이유는 “한달에 13만~15만원이면 조용한 공부방과 식사가 해결돼 독방하숙비 20만원에 비해 훨씬 경제적일 뿐 아니라 고시생끼리 생활하면서 경쟁심을 자극, 학습능률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경제적 요인뿐만 아니라 조용한 공부 환경이 고시원을 선택하는 이유가 됐습니다.

그런데 이 시기 이미 고시원이 화재에 취약하다는 점이 지적됐습니다. 1990년 3월26일 신림동 고시원 독방에서 고시생 1명이 숨진 지 4일 만에야 발견된 이후, 언론은 고시생의 죽음이 뒤늦게 발견될 수밖에 없는 삭막한 고시원의 환경에 주목합니다. 당시 동아일보 기사를 보면 “해당 고시원의 경우 각층마다 미로같은 복도 양 옆에 2평 남짓한 독방 20~30여개 빽빽이 들어서있어 화재 등에는 비상시 피해가 커질 우려가 있다”면서 “일부 독서실은 좁은 공간에 환기나 채광시설도 없이 벌집같은 밀실을 마구 만들어 이용자들의 건강에도 유해한 곳이 많다”고 합니다. 

당시 동작구청의 한 관계자는 “대부분의 고시원이 독서실 허가를 얻어 영업하고 있으나 안전과 최소한의 환경기준 등이 없어 행정지도 및 단속이 불가능한 실정”이라며 고시원 안전 점검의 한계를 토로하기도 했습니다. 

■조용한 공부방에서 저렴한 쪽방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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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녹번역 고시원에서 거주하는 한 노인 /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이 고시원이 임대 보증금 없이 저렴한 월세로 잠자리를 해결하려는 저소득층의 터전으로 변모하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무렵으로 추정됩니다. 특히 2000년대 후반 국가고시 제도 변화로 고시생이 줄어들면서 비교적 저렴한 가격의 주거지를 찾는 일반인들까지 고시원을 선택하는 경우가 늘었다고 합니다.

사실 고시원과 같이 ‘비주택 거처’가 급부상하는 현상은 우리나라에서만 일어난 것은 아닙니다. 경제가 성장하고 도시를 개발하면서 판자촌이나 달동네 같은 무허가 정착지를 ‘밀어버린’ 국가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일입니다. 대표적으로 홍콩·싱가포르·대만·한국 등 동아시아 국가 대도시들이 그렇습니다. 이들 대도시의 저소득 노동자들은 판자촌이나 달동네가 사라졌다고 해서 당장 아파트와 같은 합법 주택에 살 형편이 되지 못합니다. 하지만 살 곳이 없다고 해서 일자리가 많은 대도시를 떠날 수도 없지요. 이때 이들에게 고시원 같은 값싼 ‘비주택 거처’는 요긴한 해결책이 되었던 것입니다. 도시를 떠나지 않으면서, 그렇다고 판자촌에 가지 않으면서도 저렴한 값에 주거를 해결할 수 있는 공간이 돼주었으니까요.

그렇게 고시원은 쪽방·여관방 등과 함께 대도시 저소득 노동자들이 보증금 없이 월 25~40만원의 저렴한 월세로 잠자리를 해결할 수 있는 대표적인 거처로 자리잡아갔습니다. 2014년 발표된 논문 ‘서울지역 고시원 거주자의 주거실태 및 만족도’에 따르면 실제 고시원 거주자들의 대부분(65%)이 ‘집이 없고 경제적 형편상 달리 방법이 없어 고시원에 거주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실제 이들의 95%가 본인의 근로로 수입을 마련하고 있었지만, 월 평균 소득은 70~100만원(29.3%)·50만원 이하(29.3%)로 많지 않았습니다. 연령은 높았습니다. 이들의 71.9%는 40~50대로 평균 나이가 52.2세에 달해 ‘고시생’의 평균 연령을 훨씬 상회했습니다.

고시원 거주자들은 주거 환경에 대해서는 전반적으로 불만족(44.6%)한다고 답변했는데, 특히 공간의 습도·통풍·채광 그리고 방음 문제가 심각하다고 토로했습니다. 1990년대 고시생들이 ‘조용한 공부방’으로 이용했던 고시원은, 어느덧 2010년대 노동자들의 ‘시끄럽고 좁지만 값이 싼 방’으로 변모해 있었습니다. 

■무법지대 고시원, 끊이지 않는 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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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월 12일 새벽 화재로 4명이 숨진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매산로2가 고시원 화재현장. 김정근 기자

 


고시원은 이처럼 저소득 노동자들의 최후의 주거지가 됐지만, 안전 대책은 부족하기만 합니다. 10일 기자회견을 연 빈곤사회연대 등 시민사회단체들이 제시한 소방화재통계 현황을 보면 올해 화재 사망자 306명 중 96명이 쪽방·여관·고시원 등의 비주택에서 사망했다고 합니다. 

고시원이 오랜 시간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왔기 때문입니다. 고시원은 1970년대부터 사실상 주거시설로 이용돼왔지만 이후 수십년 동안 건축법에서 아예 존재도 하지 않았습니다. 고시원 업주들은 독서실 등으로 일단 허가를 받은 뒤 경량 칸막이 등으로 개조해 주거시설을 만들었고, 당연히 소방이나 방재시설은 전무했습니다. 2002년에야 서울시 건의로 고시원이 소방시설설치 의무대상에 포함되긴 했으나 내장재 불연재료 사용, 소화기 비치, 비상계단 설치 등의 관련 법령을 제대로 지키고 있는 고시원은 극소수에 불과했죠. 

고시원은 폭발적으로 확장해갔지만, 안전 대책은 이를 전혀 따라잡지 못했던 것입니다. 사고가 연이어 터졌습니다. 크고 작은 고시원 화재 사고가 매년 일어났고, 특히 2008년 7월과 10월에 각각 7명, 6명이 사망한 고시원 방화 사고가 연달아 일어나면서 온 사회가 충격을 받았습니다. 고시원에 대한 건축, 안전 등의 규제 필요성이 제기됐습니다. 

결국 2009년 7월 건축법 시행령에 근거규정이 마련되면서 고시원이 처음으로 양성화됐습니다. 고시원 복도 폭을 1.5m 이상으로 하도록 정하고 스프링클러 등 소방안전시설 설치가 의무화됐습니다. 그럼에도 문제는 남았습니다. 2009년 7월 법 개정 이전에 지어진 고시원에 대해선 개정 법률이 소급 적용되지 않은 것입니다. 2007년부터 운영을 시작한 국일고시원이 스프링클러를 갖추지 않은 것은 이와 같은 법의 구멍 때문이었죠.

9일 소방청 국가화재정보센터 통계에 따르면 2013년부터 지난 10월까지 발생한 다중이용업소 화재 3617건 중 310건(8.5%)이 고시원에서 발생했습니다. 올해 1월부터 10월31일까지 고시원 화재는 총 46건이나 됩니다. 일반음식점(152건), 노래연습장업(70건), 유흥주점(62건)에 이어 네번째로 많은 수준입니다. 아직까지도 고시원이 안전과 법의 사각지대에 남아있음을 보여주는 통계입니다. 

■왜 방치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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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째 최저기준 이하 고시원에서 사는 한 청년이 은평구의 한 원룸에서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고 있다. 김정근 기자

 


이토록 위험한 고시원, 왜 아직까지도 방치돼 있는 것일까요? 고시원뿐만 아니라 쪽방이나 여관방 등 ‘비주택 거처’들은 화재·붕괴 등 재난 위험에 계속해서 노출된 상황입니다. 그러나 2013년 발표된 논문 ‘대도시의 새로운 불법(편법) 주거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 따르면 중앙정부나 지방정부는 이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처하기가 쉽지 않다고 합니다. 현실적으로 도시 내 저렴주거가 부족한 상황에서 엄격히 단속할 경우 임대료가 오르거나 주거마련이 어려운 계층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해당 문제를 겪는 대다수의 국가들은 ‘제도적으로는 규제’, ‘현실에서는 묵인’이라는 모순적이고 양면적인 태도를 취하게 됩니다. 명백한 안전상의 문제가 예상되거나 인근 주민 등의 신고가 있는 경우에 한해 단속하고 규제하지만 대부분은 묵인하는 것입니다. 당장 문제 있는 고시원을 모두 적발해 폐쇄하자니, 고시원 말고는 선택지가 없는 거주자들에게 제공할 대안이 없기 때문입니다. 

논문에 따르면 이런 현상은 주거사정이 나쁜 일부 동아시아 도시에만 국한된 사례가 아닙니다. 미국, 영국, 캐나다 등 일찍부터 산업화와 도시화를 경험한 국가에들에서도 비슷한 유형의 불법, 편법 주거가 확대되고 있다고 합니다. 특히 뉴욕과 런던에서는 주택의 지하실이나 차고, 창고 등을 취사와 취침이 가능한 주택으로 개조해 세를 놓는 일이 성행하고 있는데요, 뉴욕에서는 이런 유형의 주택이 10만 호 이상 있는 것으로 추정되며 런던에서는 창고주택 등이 1만 호가 넘는 것으로 알려져있습니다. 

이들 국가에서도 이번 고시원 화재와 같은 불행한 사고가 빈번히 발생합니다. 특히 뉴욕에서는 2005년 쪽방 화재로 주민 4명이 다치고, 화재를 진압하던 두 명의 소방관이 미로 같은 벽 때문에 출구를 찾지 못해 창문 밖으로 뛰어내려 사망한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2009년에도 4개의 주거 공간으로 불법 개조한 지하주택에 불이나 7명의 사상자가 발생했고, 2011년에는 불법 개조 건물 화재로 11명이 중상을 입는 등 화재로 인한 인명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이번 화재 직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인간의 주거환경이 비인간적인 수준으로 내려가는 것을 법이 막아야 한다”며 “고시원을 법적으로 금지시켜야 한다”는 게시물이 5000회 이상 공유되며 큰 호응을 얻기도 했습니다. 이런 주장에 대해 “당장 보증금 낼 돈이 없어 고시원에 사는 사람들은 어디로 가느냐”며 우려를 표하는 누리꾼들도 많았습니다. 이들의 갑론을박처럼, 결코 쉬운 문제는 아닌 듯합니다. 선진국에서도 쉽게 풀지 못한 문제니 말입니다. 그러나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면, 경제적 여건과 상관없이 누구나 안전하고 쾌적한 공간에서 살아갈 권리가 있다는 ‘주거권’의 개념만큼 쉬운 것이 또 있을까요?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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