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한 71세 효부, 시부모·남편 죽였다···'노노부양' 시대 비극

 

 

 

 

노노부양·다중간호가 극단적 사례 낳아
고령 범죄자 늘면서 형무소 '요양시설화'
지방재정 붕괴시키는 초고령화의 늪

 

※ '알지RG'는 '알차고 지혜롭게 담아낸 진짜 국제뉴스(Real Global news)'라는 의미를 담은 중앙일보 국제외교안보팀의 온라인 연재물입니다.
 
 
세계 제일의 초고령화 국가인 일본에선 노인 증가가 심각한 사회 문제를 야기하고 있습니다. 앞으로가 더 문제입니다. 재정 위기를 비롯한 시한폭탄이 곳곳에서 돌아가고 있기 때문이죠. 지난해 9월 태풍이 휩쓸고 간 도쿄의 골목길을 위태롭게 걷고 있는 사진 속 노인의 모습이 일본사회의 어두운 미래를 연상케 합니다.[AFP=연합뉴스]
 
 
“제 손으로 가족을 죽였습니다.”

71살 할머니인 기시모토 마사코(岸本政子)가 친척에게 전화를 걸어 다짜고짜 그렇게 말한 건 지난해 11월 17일 아침입니다. 몇 시간 뒤 기시모토가(家)에선 마사코의 70대 남편과 90대 시부모가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습니다. 일본 후쿠이현 쓰루가시의 전원마을에서 발생한 이 가족 살인사건은 노인이 노인을 간병하는 이른바 ‘노노(老老) 부양’이 빚은 참극입니다. 

초고령화가 일상이 된 일본사회에선 이런 극단적인 사례가 심심찮게 보고됩니다. 고령화 속도가 세계에서 가장 빠르다는 한국에 던지는 메시지도 그만큼 크다고 할 수 있겠죠. 지금 일본에선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을까요. 
 

살인자가 된 '효부'

마사코는 마을에서 소문난 효부(孝婦)였습니다. 시아버지 요시오(芳雄·93)와 시어머니 시노부(志のぶ·95)는 생전에 ‘우리 마을 최고 며느리’라는 칭찬을 입에 달고 살았습니다. 마사코가 병든 시부모를 성심껏 수발했기 때문이겠죠. 

90대 시부모는 거동이 아예 불가능했습니다. 식사조차 힘겨워 매번 유동식을 준비해야 했고, 대소변도 받아내야 했습니다. 설상가상 남편 타키오(太喜雄·70) 역시 뇌경색을 앓아 몸이 불편한 상황이었습니다. 마을 주민들에 따르면 두 딸이 출가한 뒤 10년 이상 마사코가 노인 3명을 돌보는 일상이 계속된 겁니다. 


 

지난해 11월 17일 일본 후쿠이현 쓰루가시의 한 마을에서 70대 여성이 거동이 불편한 70대 남편과 90대 시부모를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지역신문은 이 사건을 보도하면서 시신이 발견된 저택의 사진을 실었습니다. [사진 후쿠이신문 인터넷판 캡처]
 
 

이웃인 88세 여성은 “그토록 다정한 사람은 본 적이 없다. 싫은 소리 한 번 한 적이 없다”며 이번 사건에 충격을 받은 듯 아사히신문에 말했습니다. 

그러나 최근 들어 마사코가 힘들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는 증언도 나옵니다. 또 다른 이웃인 72세 여성은 “지난 여름쯤부터 기운 없는 모습을 봤다”고 신문에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마사코로부터 “가족을 돌보는 게 너무 힘들다” “정신적인 압박이 심하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습니다. 사건 1주일 전쯤엔 퀭한 얼굴로 “너무 지쳤다. 몸이 이상하다”는 말을 건넸다고 합니다. 

결국 지난해 11월 17일 마사코의 남편은 단독주택의 2층 침실에서, 시부모는 1층 침실에서 쓰러져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마사코는 경찰에 “내가 목을 졸랐다”고 진술했습니다. 


 

‘노노부양’이 빚은 일본 살인사건.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일본에선 이와 유사한 안타까운 사연들이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2013년 2월 나라현 야마토코리야마시에선 96세인 전직 경찰관이 잠든 91세 아내를 교살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당시 남성은 “고령인 내가 먼저 죽으면 아내가 곤란해진다. 병간호에도 지쳤다”고 경찰에 말했습니다. 

2015년 2월 시가현 오쓰시에서 간병하던 아내를 살해한 80대 남성은 법정에서 “출구가 없는 시커먼 터널 안에서 발버둥 치는 듯한 괴로운 심정이었다”고 토로했습니다. 이 사건 1년 뒤에도 사이타마현 오가와정(町)에서 83세 남편이 치매에 걸린 77세 아내를 살해하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모두 ‘병간호에 지친 노인들’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습니다. 마사코처럼 3명을 동시에 돌보는 다중간호 상황은 그중에서도 가장 지독한 경우이고요. 가족 간 일로 남에게 폐를 끼치길 꺼리는 일본식 정서가 이런 문제를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공공 노인케어 시스템을 적시에 어떻게 투입하는지가 관건인데, 남의 시선을 의식해 이런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는 얘기인 것이죠. 유독 가족 문제에 취약한 한국사회도 눈여겨봐야 할 대목입니다. 
 

감옥에 갇힌 노인들

고령화는 바깥세상(?)만의 일이 아닙니다. 일본에선 형무소(교도소)도 노인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습니다. 일본에서 가장 큰 도쿄도 내 후추형무소의 경우 수감자 1800여명 가운데 65세 이상 노인이 340여명(지난해 8월 기준)인 것으로 NHK 조사 결과 나타났습니다. 즉 ‘5명 중 1명’은 노인 수감자란 것이죠. 

전체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일본 법무성에 따르면 전국 형무소 수감자 4만7600여명 가운데 60세 이상은 9000명 정도(2017년 말 기준)로 19%(65세 이상은 약 12%)를 차지합니다. 그런데 해가 갈수록 노인 수감자는 빠르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2019년 입소한 전체 2만명 중 65세 이상 수감자는 2278명으로 20년 전과 비교하면 수치상 3배가 넘고 비율로 따지면 4배 가까이 늘었습니다. 


 

고령화되는 일본 형무소 실태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이처럼 노인 수감자가 급증하다 보니 형무소 전체가 거대한 ‘노인 요양시설’로 변하고 있습니다. 후추형무소 내부를 들여다본 NHK에 따르면 보급품 창고에는 성인용 기저귀가 가득 들어찼습니다. 남의 도움 없인 기저귀를 갈지 못하는 수감자도 있습니다. 목욕탕은 미끄러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손잡이를 설치하는 등 노인 맞춤형으로 손봤습니다. 

고령자가 많다 보니 식사 준비도 까다롭습니다. 음식을 씹을 힘이 없는 수감자를 위해 야채나 고기를 좀 더 작게 썰어 넣는 등 배려를 해야 한다는 겁니다. 특별한 지병이 있는 환자들을 위해 칼로리, 염분, 알레르기 등을 고려한 식단을 짜다 보니 한 끼에 20종류 이상의 식사를 준비합니다. 당연히 형무소 내에 구비하는 약 종류도 급격히 늘었습니다. 

허리 통증 등으로 거동이 불편한 노인은 노역장에 나가기도 어렵습니다. 궁여지책으로 만든 것이 ‘양호공장’이란 큰 감방입니다. 이런 수감자들만 모아 작업을 시키기 위해서입니다. 매일 주어지는 30분간의 운동시간도 고령자들은 20분 정도 준비시간을 더 줍니다. 그래야 겨우 산책하러 나갈 수 있기 때문이죠. 

이처럼 노인 수감자들을 배려하는 시설이나 지침이 늘다 보니 비용이 많이 증가했습니다. 형무소가 일본사회의 축소판이라 불리는 이유입니다. 일본사회는 고령자를 위한 복지 비용 증가로 심각한 재정 위기를 걱정합니다. 실제 일부 지역에선 징후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 문제는 잠시 뒤 다시 들여다보겠습니다. 


 

일본에선 고령 범죄가가 늘면서 교정시설의 시설 개보수 비용이 계속 늘고 있습니다. 사진은 지난해 7월 일본 정부가 언론에 공개한 도쿄구치소 내 독방의 모습입니다. [AP=연합뉴스]
 
 

고령화는 필연적으로 죽음과 맞닿아 있습니다. 후추형무소 내에선 한 달에 한 명꼴로 사망자가 나옵니다. 시신을 거둘 가족이 없으면 화장한 뒤 일정 기간 형무소에 보관한다고 합니다. 죽어서도 감옥을 벗어나지 못하는 겁니다. 이런 유골은 망자의 영혼을 기리는 오봉(お盆·일본의 추석, 8월 15일) 기간에 맞춰 공공 묘지로 이관합니다. 

형무소 고령화의 배경에는 노인 전과자의 사회 복귀가 어려운 탓도 있습니다. 출소해도 먹고 살길이 막막하다 보니 또다시 범죄를 저지르고 재입소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후추형무소의 고령 수감자들은 평균 7번 재입소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 중엔 총 30차례 형무소를 들락거려 50년간 재소한 90대 수감자도 있습니다. 스스로 형무소를 요양시설로 여기는 노인 범죄자가 있다는 겁니다. 

전반적인 노인의 경제적인 열악함이 범죄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옵니다. 일본과 비교해 연금 부족 등 사회복지의 사각지대에 처한 고령자가 훨씬 많은 한국의 상황은 시한폭탄과 다름 없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설국’ 니가타의 재정위기

소설 『설국』의 배경인 니가타현은 심각한 재정위기 상황에 놓였습니다. 2019년 현 재정을 수개월간 조사했던 전문가회의에서 “긴급사태”라는 지적이 나올 정도입니다. 이대로는 현립 병원을 유지할 수 없고, 꼭 필요한 행정 서비스를 갑자기 중단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는 겁니다. 


 

재난 상황도 지방 재정을 더욱 악화시키는 요인입니다. 사진은 지난해 7월 지진 피해를 입은 니가타현 무라카미시의 주민들이 대피소에 모여 있는 모습입니다. [AP=연합뉴스]
 
 

직격타를 맞은 곳이 보육시설입니다. 보육사 1명당 아동 3명을 돌볼 수 있도록 사립 보육원에 대해 현이 27년간 인건비 등 보조금을 지원해왔는데, 이 제도가 사라질 위기에 처했습니다. 시급하지 않다는 이유에서입니다. 눈이 많아 ‘설국’으로 불리는 니가타의 특성상 제설, 도로복구 비용 등은 반드시 책정해야 하니 아동 관련 예산 등은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는 겁니다. 

재정위기의 핵심은 역시 고령화에 있습니다. 니혼게이자이(닛케이)신문에 따르면 농어촌 지역인 니가타는 전국 평균을 웃도는 인구 격감지입니다. 일할 젊은 층의 유출은 갈수록 늘어나는 반면 복지비용을 집어삼키는 노인들만 고향을 지키는 한국의 농촌 현실과 판박이입니다. 


 

고령화로 재정위기에 빠진 니가타현.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세수 부족분은 결국 중앙정부의 교부세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데 이마저도 여의치가 않습니다. 고령화에 따라 일본 정부가 지방교부세를 배분할 때 의료·간호 관련 비용(후생노동비)을 급증시키다보니, 역설적으로 노인 수가 많은 수도권 등 도시 지역에 교부세가 집중되기 때문입니다. 가뜩이나 재정 상황이 나쁜 지방은 더욱 어려운 국면으로 빠져드는 구조적인 위기가 도래한 셈입니다. 

지방에서 고령화가 저출산을 부채질하는 것도 결국 예산 문제 때문이란 볼멘소리가 나옵니다. 아동 예산 축소는 '애 키우는 젊은 부부'를 대도시로 등 떠미는 부작용을 낳을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지방의 붕괴 속도가 더욱 가팔라질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같은 고민을 안고 있는 한국은 과연 이런 위기에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을까요. 이미 현실로 다가온 초고령화 사회에 대해 좀 더 깊이 고민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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